
발리에서 1년에 단 하루, 섬 전체가 멈춥니다. 발리 힌두교 신년인 녜삐데이(Nyepi)는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24시간 동안 불을 켜지 않고, 일하지 않고, 외출하지 않는 날입니다. 저도 작년에 발리에서 녜삐데이를 경험했는데, 솔직히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지킬 줄 몰랐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기대했지만 구름 때문에 하나도 보지 못해 아쉬웠고, 작은 풀빌라에 갇혀 있던 시간은 생각보다 답답했습니다.
녜삐데이, 발리 힌두교 신년의 침묵 의식
녜삐데이는 발리 달력(Saka Calendar)에 따라 정해지는 힌두교 신년으로, 서기 7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통을 가진 의식입니다(출처: 위키피디아). 이 날은 자아성찰(self-reflection), 금식(fasting), 명상(meditation)을 위해 온 섬이 침묵에 잠기는데, 단순히 조용히 지내는 수준이 아닙니다. 여기서 침묵이란 물리적 소음 제거를 넘어 모든 감각적 자극을 차단하고 내면으로 향하는 영적 수행을 의미합니다.
녜삐데이 당일에는 네 가지 금기 사항인 차투르 브라타(Catur Brata)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아마티 게니(Amati Geni)는 불과 빛 사용 금지로, 전기조차 최소한만 사용합니다. 아마티 카리야(Amati Karya)는 일 금지, 아마티 렐룽가난(Amati Lelunganan)은 이동 금지, 아마티 렐랑우안(Amati Lelanguan)은 오락과 유흥 금지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하루 동안 완전히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인 셈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 규칙이 얼마나 철저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묵었던 지역에는 페찰랑(Pecalang)이라는 전통 마을 경비대가 거리를 순찰했는데, 누군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즉시 제지당합니다. 발리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도 예외가 없습니다. 응우라라이 국제공항도 24시간 완전히 폐쇄되고, 해변이나 거리 출입이 전면 금지됩니다. 규칙을 어기면 추방될 수도 있다고 하니 정말 엄격한 편입니다(출처: 발리관광청).
일각에서는 "관광객에게까지 이런 제약을 두는 게 과한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이 경험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발리가 하루만큼은 완전히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면서, 현대 사회에서 진짜 쉼이 뭔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오고오고 퍼레이드와 전날 준비사항
녜삐데이 전날 저녁, 발리 곳곳에서 오고오고(Ogoh-ogoh)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오고오고는 대나무, 종이, 천, 반짝이 장식으로 만든 거대한 악령 조형물로, 부정적 에너지와 악령을 상징합니다. 각 마을 반자르(Banjar, 발리 전통 공동체)에서 몇 달에 걸쳐 직접 제작하는데, 높이가 수 미터에 달하는 것도 많습니다. 여기서 반자르란 발리 힌두교 공동체의 최소 행정 단위로, 마을의 종교·사회 활동을 함께 관리하는 조직입니다.
퍼레이드는 부타 야즈냐(Bhuta Yajna) 의식의 일부로, 신(God)과 인간(Humankind), 자연(Nature)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악령을 달래기 위한 제의입니다. 쉽게 말해 지난 한 해 쌓인 나쁜 기운을 오고오고에 담아 태워버림으로써 깨끗한 상태로 새해를 맞이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해질 무렵 시작되는 펭루푸칸(Pengrupukan) 의식에서는 집집마다 냄비나 대나무 통을 두드리고 야자수 잎 횃불을 들고 다니며 악령을 쫓아냅니다.
저는 작년에 아쉽게도 퍼레이드를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녜삐데이 최소 2주 전부터 거리 곳곳에서 오고오고를 만드는 작업을 실컷 볼 수 있었습니다. 각 마을 청년들이 모여 색칠하고 장식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완성된 조형물의 디테일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일부 오고오고는 퍼레이드 후 소각되지만, 박물관이나 컬렉터에게 판매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녜삐데이를 앞두고 꼭 알아야 할 준비사항이 있습니다:
- 전날 오후 5시경부터 교통이 통제되기 시작하니 서둘러 숙소로 이동해야 합니다
- 당일은 ATM도 작동하지 않고 현금 인출이 불가능하므로 미리 현금을 준비하세요
- 식당도 대부분 전날 일찍 문을 닫으니 장을 미리 봐두는 게 필수입니다
- 녜삐데이 당일에는 배달 서비스도 완전히 중단됩니다
저도 전날 슈퍼마켓에 들러 먹을 것을 잔뜩 샀는데,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계산대 앞이 북적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루쯤이야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 경험상 발리는 이 규칙을 정말 철저하게 지킵니다.
호텔 선택이 녜삐데이 경험을 좌우합니다
녜삐데이 기간 발리에 머문다면 호텔 선택이 정말 중요합니다. 호텔 내부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밖으로는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년에 친구와 함께 작은 규모의 풀빌라에 묵었는데, 솔직히 꽤 답답했습니다. 방 하나와 작은 수영장이 전부였고, 2박을 그 안에서만 보내려니 할 일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친구와 함께여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혼자였다면 정말 지루했을 겁니다.
"호텔 안에 있으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면 생각보다 훨씬 제약이 큽니다. 큰 규모의 리조트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수영장, 레스토랑, 산책로, 스파, 피트니스 센터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어 하루 종일 호텔 안에 있어도 덜 답답합니다. 일부 대형 호텔은 녜삐데이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요가, 명상, 전통 공예 체험 등)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올해 녜삐데이는 별을 꼭 보고 싶습니다. 발리 전역의 불이 꺼지면 밤하늘이 정말 아름답다고 하는데, 작년엔 구름이 많아서 별이 하나도 안 보였습니다. 빛 공해(Light Pollution) 없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1년에 딱 한 번뿐이니, 올해는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빛 공해란 과도한 인공조명이 밤하늘을 밝혀 별빛을 가리는 현상으로, 도시에서는 보통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이 10%도 안 된다고 합니다.
녜삐데이 다음 날은 응엠박 게니(Ngembak Geni)라고 불리는데, '불을 다시 켜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날부터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서로 용서를 구하고 종교 의식을 함께 치르며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침묵의 24시간이 끝나고 발리가 다시 활기를 되찾는 모습을 보면, 이 축제가 단순한 종교 의식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리셋되는 시간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녜삐데이는 단순히 특이한 경험을 넘어, 멈출 줄 모르는 현대 생활에서 진짜 휴식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발리에서 이 시기를 보낼 계획이라면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하고, 무엇보다 큰 규모의 호텔을 예약하는 걸 추천합니다. 그래야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